#2-3 스페인의 세 번째 도시, 마요르카 섬(할말이 많아 3편으로 나누어씀)
이 섬은 한국에서는 신혼여행지로 떠오르고 있고, 외국인들이 여행으로 선호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평온을 찾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심할 장소'로 정했다는 이야기를 한번 언급한 적이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아주 위험한 실수였고,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결정할 수 있는 순간이 돌아온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갔을 곳이다. 이에 관한 복잡한 사정이 있다.
말라가의 그 정글 같은 호스텔에 룸메이트로 중년의 독일남자분이 들어오셨다.
그는 살짝 거만한 느낌 혹은 재수없는 태도를 아주 쪼오금 풍겼는데, 그렇게 느낀 계기가,
나의 다음 목적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다음 목적지는 마요르카야" 라고 했더니 그가 풋, 비웃었다.
분명히 비웃었고, 그 후에 "미안, 그런 뜻은 아닌데"라고 애써(예의상) 변명했다.
그 곳은 재미없는 독일인들이 여름에 짝짓기 하러 간다는 뭐... 해석하자면 그런 말을 덧붙였지.
마치 여름의 이비자 섬 같은 존재라는 것인가...
그 며칠 후에는 대낮부터 칵테일을 홀짝대다가 흥에 겨워, 절대 관광명소일 리는 없지만 조건이 혹했던 와인박물관을 다녀왔는데(박물관 입장비용에 시음이 2잔이나 포함, 술만 마셔도 이득) 그 관리자가 마침 마요르카에서 오랜 세월 자라다가 말라가로 나온 현지인이었다. 표현은 '그 곳에서 자랐고, 지금은 이 곳 말라가에 있어'였지만, 그 분의 말투와 표현에서는 마치 내가 수원의 낡고 지긋지긋한 동네에서 살다가 간신히 서울로 빠져나온 사정을 설명할 때와 같았다.
내가 이미 마요르카를 열흘이나(!) 체류할 목적으로 항공권과 숙박을 예약했다고 말하자, 그녀는 즉시 "그거 지금이라도 취소할 방법이 없어???"라고 말했고 나는 심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스페인 남부에 좋은 곳 많은데 왜 거기를 가냐는 것이었다. 세비야가 정말 좋다고, 다시한번 생각해보라고 말했고 나는 이미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마지못해 로컬 맛집 한 군데를 추천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마요르카를 선택한 것이 옳은 일일까?
심지어 나는 그 곳에서 크리스마스 이브, 당일, 그리고 12월31일까지 보내고 새해 첫 날의 일부도 그 섬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정으로 잡아놓았단 말이야!
그래, 남들이 뭐라해도 내 취향에만 맞으면 되지 뭐.
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마요르카에 도착 후 공항에서 호스텔로 가는 길, 그 다음날 호스텔에서 팔마(Palma) 시내로 오는 여정에서 '그들이 내게 건넨 충고와 비웃음'은 진정어린 조언이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지저분한 거리와 삭막한 사람들의 표정(특히 공항에서 시내 들어가는 버스 안), 호스텔의 룸메이트 중 한 분은 마치 갈 곳 없는 외노자처럼 모든 짐을 그녀 침대 주위로 처박고 매일 방에만 틀어박혀있다가 가끔 통화로 무슨 얘기를 하면서 울기도 하고... 대체 이 섬은 무슨 목적으로 오고가는 곳인지.
관광지, 혹은 휴양섬으로서 아름답게 보이는 곳은 가우디가 설계했다는 마요르카 대성당과 그 부근 뿐이었다.
하지만 그 곳의 올라가는 계단 주위로 노동자들 몇 분이 바닥에 자리를 깔고 기념품을 팔고 있었으며, 따라서 나는 그 성당에서 뷰가 좋은 다른 곳을 찾아 앉아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나의 소중한, 황금같은, 인생에 다시 없을지도 모를, 한달이 넘는 긴 홀리데이에 큰 오점을 남긴 자신을 위로해야할 지, 혼내야 할 지.
그러고보니 생각난건데, 첫 날 밤에 호스텔 체크인 하고 침대를 배정받았는데, 올라가보니 누군가 내 침대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 컴컴한 방에서 한참을 확인하다가 리셉션에 이야기하고 다른 침대로 바꾸어 쓰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그 누군가가 자기 마음대로 1층침대에서 편히 자기 위해 베드를 바꿨던 것. 나는 결국 체류 내내 불편한 2층침대를 써야만 했다.
(호스텔은 합리적인 곳이었지만, 리셉션의 그 누구도 이런 나를 위해 나중에라도 1층침대로 바꿔주려는 친절은 베풀지 않았다. 나의 리퀘스트에도 불구하고..)
마요르카 체류 초반의 기억을 되돌이켜 보려고 하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렇지만, 그 후에는 정말 좋은 추억들을 쌓고 왔다. 그 섬 자체가 준 추억이라기 보다는,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 그래서 내가 이 섬에 갔던 사실을 '완벽하게 실수했다'고 후회하거나 자책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 사람들과의 시간은, 그 섬이 아니었더라면 만들지 못했었을 것이기 때문에.
다음 편에 이야기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