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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스페인의 마지막 도시, 세비야(SEVILLE)에서의 리프레쉬

kimkiwiKKK 2019. 10. 4. 09:51

"세비야가 뭐가 그리 좋은 지 직접 가보아주마!" 라고 생각했으면서, 조건을 다르게 설정한 것은 공평하지 못했다.
세비야에서는 호화로운 에어비앤비 독채를 예약했기 때문이다.
이 숙소를 예약한 것은 바야흐로 열흘 전 마요르카에서 인도인친구에 시달릴 때였다.
혼자 있을 시간이 곧 필요할 때가 오겠다 싶어, 아파트를 빌렸다.

세비야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까지는 도보로 십분 여 더 걸어야 했는데, 왠지 이미 한국인 관광객이 곳곳에서 보였다.
아마 그라나다->세비야 루트가 대중적인 방향이기 때문이겠지.
숙소는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비교적 주택가 쪽이라서 내겐 최적이었다.
근처에 내 최대 마트 '리들'도 있었고, 조금만 걸어가면 식당들과 번화가 초입부도 보였다.
내가 빌린 숙소는 요즘 자주 보게 되는, 사업으로 집을 빌려 임대하고 있는 케이스였다.
그래서 체크인을 스스로 하고, 주인을 만날 일은 없다.

집을 처음 보았을 때, "기가 막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는 뜻.
깨끗하고, 넓은 거실에, 큰 티비, 부엌, 세탁기도 빌트인이고, 침대 방도 따로 있는데 아늑하고 인테리어까지 마음에 들었다.
아쉬운 것은 통창이 있는데 그게 건물 내부로 향하고 있어서 바깥 공기를 마시기에 좋은 아파트 형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로 쓰이는 걸지도..? 통창 베란다를 열면 사각형 아파트의 내부 복도 쪽으로만 공기가 통한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어찌되었든 집은 홀로 지내기에 너무나도 편한 조건이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식료품을 공수할 겸 리들 마트를 다녀온 후 밖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
'걷는 여행'의 유일하게 쉬는 기간. 밖에 나가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 좋은 숙소를 두고 어딜가냐며, 아주 늦은 저녁에 잠시 바람만 쐬러 살짝 외출했을 뿐, 체크아웃 날까지 방에만 콕 박혀서 즐거운 자취생활을 체험했다.

와인도 들이키고, 티비도 틀어보고, 저렴한 식재료로 새우 소금구이를 하고, 고기도 구워먹고, 빨래하고, 낮잠자고, 책도 읽으면서 미래의 자취생활을 꿈꾸던 시간. 너구리 라면도 구해와서 라면도 끓여먹고, 감자칩도 사다먹고... 아주 신났어.

그래서 세비야를 공평하게 평가할 수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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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예 외출하지 않은 건 아니다. 
느즈막히 강가를 산책하러 다녀오거나, 세비야 광장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고 돌아오거나..
아 그래! 그 때가 마침 주헌절이었다. 동방박사 오신날.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보내느라 길이 오히려 조용하고, 동방박사 오신 날(1월6일)이 도시적으로는 더 큰 행사였다.
그 전야제랄까, 1월5일에는 어마어마한 퍼레이드, 차를 타고 지나가는 귀여운 코스튬의 행사참가자들이 뿌리는 대량의 사탕, 그 흩뿌려지던 사탕을 줍기위해 애 어른 할 것 없이 집에서 봉지를 가져와 신나게(미친 듯이) 담던 그 유쾌한 모습.
에어비앤비 숙소와 더불어, 이 퍼레이드가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전체적으로 평화로운 잉여생활을 즐긴 후, 체크아웃 후 캐리어를 끌고 길을 나섰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사람마냥, 유독 캐리어가 무겁게 느껴지던 그날 아침.
시내 한복판의 짐 보관소에 캐리어를 맡기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 때가 주헌절 다음날이라, 스페인은 이 때부터 대대적인 세일, 블랙프라이데이 저리가라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세일의 시작이었다.
나는 한정된 시간, 돌아갈 숙소가 없어 불리한 조건을 딛고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가게들을 둘러봤다.
(결과적으로 세일하는 품목은 사지 못했지만... 그래도 잠들어있던 물욕이 샘솟는 하루 였다. 내가 쇼핑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이 날 세비야를 다 털어갔을 것이지만.. 나는 물건을 하나 사는 데도 시간이 엄청 걸리는 타입인지라 아무 것도 골라올 수 없었다..)

이 날이 세비야, 그리고 스페인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이제 포르투갈의 남부, 라고스(LAGOS)로 떠난다.
내 인생 여행지. 돌아가고픈 시간. 여행의 절정. 내가 꿈꾸던 이번 여행의 형태를 제대로 경험한 시간.

 

내 여행에 빠질 수 없는, 마트 투어. 난 어느 동네를 가든 마트는 꼭 들어간다. 스페인(왠만한 유럽국가라면 그렇듯) 마트물가가 정말 착하다. 
동방박사 오신날에는 저런 빵을 먹나보더라고. 양이 너무 많아서 안샀다.
사진을 가로로 돌리려는 수고는 하지 않는 나.. 저 육회가 맛있어서 추가로 리조또도 주문했는데 둘다 맛있었다. 조금씩 여러가지 먹기 좋은 식당.
스페인광장. 여기 건물이 정말 품위있으면서도 힘이 넘치는 게 내 취향저격. 물이 흘러서 시원함도 느껴진다. 밤엔 더 예쁘고.
주헌절 퍼레이드로 저렇게 귀여운 차들이 지나가면서 그 위에 탑승한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사장을 무지막지하게 뿌려댄다. 트럭 한대분 이상 뿌리지 않았나. 물 뿌리듯이 뿌리고, 트럭 어딘가에서 대형 봉지 채로 사탕이 나온다. 나는 가까이 가지 못해서 저거밖에 못 주웠다.
그러고보니, 세비야는 '플라멩고'의 고장이지. 바르셀로나와는 스타일부터 다른 독특함. 화려한 의상과 강렬함. 하지만 개인적으로 공연의 퀄리티는 바르셀로나가 나았다. 배우가 훨씬 압도적으로 바셀 쪽이 훌륭했어. 저 곳은 플라멩고 박물관이라 관람료와 패키지로 공연을 끊었는데, 의외로 박물관 구성이 좋았다. 공연보다 더. 공연장은 위에가 뚫려있는 건물이라, 소리가 안으로 울리지 않고 빠져나가서 나에겐 감점요인.
플라멩고 관람 후 밤 풍경. 스페인광장. 그리고 돌아와서 와인과 새우구이. 진작 저걸 구웠다면 마트로 당장 달려가 추가로 새우를 더 샀을거다. 마지막날 밤에서야 구운 게 나의 실수.
콜럼버스씨가 잠들어 계시다는 성당. 34층을 올라가면(!) 저 가운데 사진의 전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약간의 뿌듯함과 칼로리 소모.
숙소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두었어서 대충 캡쳐해봄. 햇빛 안들어오고 추위가 감도는 것 외에는 멋진 곳. 마치 강남 어느 오피스텔 같은 내부 구조. 부엌도 쓰기 편리했다. 모카포트로 커피도 끓여마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