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일상처럼.../17 서울 언저리에서.. 여행이라고 불러도 될까

#1-1 서울살이 자취생의 서울 여행 기록, 그 첫번째 시작

kimkiwiKKK 2019. 11. 4. 13:13

2015년 8월부로 서울에서 일을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으로의 첫 걸음. 그리고 수원에서 편도 한시간 반 이상 소요되는 출퇴근에 지치고, 독립해서 혼자 살고싶다는 오랜 소망을 이루겠다는 결심으로 한달 여 만에 자그만한 자취방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 자취생활도 어찌보면 여행의 일종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제는 여행과 일상에 경계를 선명히 두지 않겠다는 마음이기에 그 시절을 돌아보면 '조금 길었던 여행'으로 생각하게 된다. 마치 에어비앤비를 빌려 한달살이를 하는 사람처럼 살았던 건 아닐까. 회사생활도 돌이켜보면 서울 체험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고, 워킹홀리데이로 오사카에서 살면서 아르바이트 한 것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내가 이 카테고리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자취생활에 대한 것이 아니다. 서울에 살면서 서울을 여행했던 경험들에 대해서이다. 일본 여행관련 회사에 다니면서 여행 겸 견학을 종종 다녀오긴 했지만, 그보다 임팩트있었던 경험은 당시 유행하고 지금도 선호하는 분들이 계신 '호캉스'라는 것이다. 나는 서울에 자취방을 두고 몇 번에 걸쳐 서울 호텔에 숙박했었다. 그리고 그 만족도는 어느 해외여행 못지 않았다. 120%의 만족도를 느낀 몇 안되는 여행 경험 중 하나로 꼽을 수도 있다. 그래서 호캉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호캉스'라는 개념을 들은 건, 2017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전에는 나의 흥미는 오로지 여행으로 어딘가 멀리 떠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남들처럼 유럽에 배낭여행을 가서 하루종일 성당이나 박물관, 유물 따위를 돌아보며 하루를 혹사시키는 걸 좋아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잘 몰랐던 거 같다. 내가 진정 뭘 좋아하는 지를 몰랐기에 가이드북 혹은 남들이 다녀온 여행루트를 똑같이 밟으며 '즐거워야 하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라고 가끔 회의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호캉스로 여행 방식을 수정하는 것과 동시에, 그 즈음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여행방식(혹은 삶의 방식)을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사실 나는 안락한 호텔에서 좋은 환경을 누리고, 동네를 거닐고, 생활하듯이 여행하는 타입인 것이었다. 익숙환 환경에서 동떨어져 있으면 사실 그만이었다. 서울 어느 낯선 동네를 여행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실을 첫 배낭여행을 경험했던 스무살 이후로 7여 년 만에 깨달았다. 굳이 파리 로마 아니어도 되었고, 여의도나 삼성역 어느 부근에서도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한동안 호텔 사이트를 수도없이 들락거렸다. 그 해에 주어지는 나의 여름휴가를 호텔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비행기표 알아보듯, 해외 관광지 정보, 식당 정보 찾듯이 호텔을 열심히 알아보다가 어느 체인에 꽂혔다. <호텔 더 디자이너스>라는 감각적인 부띠크 호텔이었다.

http://hotelthedesigners.com/

 

Hotel the Designers |

[2019 한국소비자 평가최고의 브랜드 대상] Details

hotelthedesigners.com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일반 룸도 있지만, 나는 스위트 룸의 그 개성있는 방에 꼭 묵고 싶었다. 가격이 인터넷 최저가 기준으로 2박 총 20만원이 훌쩍 넘었던 기억이 난다. 20만원 중반 정도였을 듯....(아무리 찾아도 결제했던 내역이 안뜨니... 분명 거금을 결제하고 묵었을텐데!)

내가 결정한 지점은 여의도점. 이유는 그 지점이 당시에 제일 저렴했다는 것과, 아직 많은 지점이 생기기 전이라 선택권이 비교적 한정되어 있었던 사정도 있다. 

http://hotelthedesigners.com/yeouido/

 

Hotel the Designers l Yeouido

 

hotelthedesigners.com

화려하고 호화롭다. 휴가 시작하자마자 짐 싸서 공항으로 부랴부랴 이동하는 바쁜 일정을 실행할 필요도 없다. 관광보다는 휴양에 가까운, 첫 여행이다.

>

휴가 첫 날(당시는 신입이라 휴가를 3일밖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일정의 수요일!). 여의도로 향했다. 자취방이 용산구라 그다지 멀지도 않다. 버스 타고 몇 정거장 후 내렸을 뿐이다. 여의도가 이렇게 가까운 지 그 때 처음 알았다. 체크인 시간은 15시. 나는 휴양컨셉이 익숙치 않은 한국인 답게 아주 이른 시간부터 출발해서 12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도착해버렸다. 주변은 점심먹으러 나온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어제까지만 해도 저런 직장인 사이에서 바삐 점심 먹고 부랴부랴 산책하고 있을 시간인데, 여의도 번화가 한 복판에 직장인들 사이에서 기분좋게 부유하고 있는 기분. 신기하다. 기쁘다. 묘한 우월감도 든다. 물론 3일만에 끝날 기이한 경험이겠지만. 

호텔 주변에서 뭘 하고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IFC몰에 들어갔다. 역시 여름에는 실내가 최고야. 쇼핑몰에서 구경도 하고, 마침 호캉스 휴가에 필요한 물품들도 있어서 사러 들어갔다. 책을 잔뜩 구매하고, 혼자 놀기위해 퍼즐 따위도 구매했고. 또 뭘 샀더라.. 옷도 샀다. 여행지 가면 의례 그런 쇼핑들도 하지 않는가. 나도 여행 중이니 굳이 여의도까지 와서 옷을 샀다는.. 청치마를 샀던가? 여행 기분을 내기에는 적절한 금액의 쇼핑이었다고 기억한다.

식사는 호텔 방에서 하고 싶어, 딱히 무언가를 먹지 않았다. 그리고 체크인 시간 15시 딱 되자마자 입실할 계획이었다. 짐을 가득 짊어지고, 바삐 호텔로 움직였다. 

외관을 따로 찍지 않아서 공식 홈페이지에서 퍼왔다. 실제로는 건물들 사이에 둘러싸인 느낌이다.

따로 내가 방을 고를 기회는 주지 않았고, 직원이 알아서 배정해주었다. 나는 또 수동적인 성향이 있어서, 일단은 그대로 들어갔다. 방마다 개성이 있는데, 임의배정이라니. 그런 방이 다음과 같다.

얼마나 방이 마음에 들었으면, 전등 스위치 위에 적힌 호수까지 찍었을까. 지금의 나라면 저런 핑쿠핑쿠한 블링함을 견디지 못하고 프론트에 전화를 걸어 "저 도저히 이렇게 샤랄라한 방에 있지 못할 거 같아요! 제발 방 바꿔주세요!" 했을텐데, 그 당시 취향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었으므로 다행이다.

사진을 잘 찍지 않던 그 당시의 나로서는 파격적으로 무려 호텔 내부 사진만 스무장을 넘게 찍었다. 지금 올린 사진으로 추리는 것도 힘들었다. 세세히 보면 스위트룸이라고 부르기에 쪼오금 아쉬운 부분(사용감)이 느껴지는 곳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나는 너무나도 행복함 그 자체였다. 이 곳에서 이틀이나 묵게 될 것이다. 자취방에는 없는 큰 티비 화면으로 영화도 마음껏 보고, 책도 잔뜩 읽고, 심심하면 퍼즐도 맞추고, 내가 제일 기대하던 욕실의 안락한 욕조에서 거품목욕도! 이렇게나 행복할 수가! 최고의 호사를 여행갈 때보다 훨씬 저렴한 금액으로 누릴 수 있게된 것이다.

>

여의도 영풍문고에서 잔뜩 산 책과 퍼즐류, 즐길 거리를 풀어놓았다. 영화도 보았다. 이 곳에서 인상깊었던 영화는 단연 <에비타>. 마돈나가 그렇게나 매력적인 배우인 줄 이때서야 알았다. 그 후로 종종 에비타 OST(넘버)를 마돈나 버전으로 듣고는 한다. 특히 <I`d Be Surprisingly Good For You> 를 정말 사랑한다. 호화로운 공간에서 매혹적인 마돈나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동진 평론가를 좋아해서, <영화당>도 봤다. 만날 꾸진 노트북 화면으로 보다가 화질 좋은 큰 티비로 보니 새롭다.
어매니티로 놓인 커피도 마시고, 퍼즐도 맞추고.. 아! 색연필도 샀었다. 그림그린다고ㅋㅋㅋㅋ 전혀 그리지 않았다.
당시에는 수기로 일기를 쓸 때라, 노트랑 감상문, 볼펜도 바리바리 싸가지고 갔고, 읽을 책들은 영풍문고에서 갓 사온 따끈따끈한 녀석들과 중고서점에서 산 녀석들도 있다. 심지어 성경까지... (물론 읽지 않았다)
뭐 어쩌라고. 

이것저것 알차게 잘도 놀았구나. 밥도 근처에서 테이크아웃해서 방에서 먹고 그랬는데 뭘 먹었는지는 안찍었다. 

서점 지출이 제일 높았고, 조피디라는 곳에서 도시락을 사서 먹었나보다. 버거킹은 기억이 안나네. 뭔가 간식을 샀으려나. 편의점에서도 주로 사다 먹었다. 버쉬카는 옷을 샀나보다. 무슨 옷인지 기억도 안나. 

이 여행의 특징은, 식비에는 지출을 적게 하고 호텔에만 올인했나보다. 다 편의점에서 해결했나? 배달도 안시키고? 지금이라면 조금 다른 식으로 즐겼을 법 하지만, 그 당시에는 편의점 도시락, 간식으로도 충만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2박3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호캉스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2017년 나의 여행은 '호캉스'로 완성되었고, 이 이후에 몇 번의 호캉스를 더 경험했는데 그 경험에 대해서도 쓸 예정이다. 호캉스 경험담 겸, <호텔 더 디자이너스> 경험담이다. 그들은 알까? 내가 그들의 호텔 체인을 좋아해서 세 군데나 묵었다는 것을? 이 정도면 다른 새로운 지점들도 몇 군데 더 가서 <호텔 더 디자이너스 모든 지점을 파헤쳐본다!>라는 주제로 글이라도 하나 엮어보고 싶은 지경이다.

저 방에서의 체크아웃 하는 날, 아쉬워서 마지막으로 한 컷 찍어두었다. 핑크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은은한 빛도 담아가고 싶었고, 호텔의 하아얀 침구의 포근함도 더 느끼고팠다. 저 공간에서 혼자 노는 시간이 이다지도 즐겁다니. 연애 하기는 글렀구나 싶었지만 슬프지 않았다. 욕조에서 놀고, 음악 듣고, 낮잠 자고... 직장인의 휴가로서 이렇게 1분1초의 위기나 피로감 없이 오로지 평온할 수도 있구나 싶어 아직도 그 때의 좋았던 감정들을 간직하고 있다. 아마 내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핑크방이 아닐까 지금은 생각하지만.

참고로 다른 스위트룸은 이런 느낌이다. 지금이라면... 두번째나 세번째를 선호하지 않을까.

 

(추가) 생각해보니 2박3일이 아니라, 1박2일이었나... 지출내역을 보니 여의도에 2박했다는 흔적이 어디에도 없다. 그치만 나에겐 이득이야. 1박만 했는데 2박의 기억으로 부풀려져 있었던 거 말야. 하지만 책을 저렇게나 가져갔는데 고작 1박만 했다고? 대체 난 몇 박을 한거야??

(추가2) 드디어 결제내역 찾았다. 인터파크 호텔에서 예약하고 119,000원으로 빠져나갔다! 아니 왜 숙박일보다 결제일이 더 늦은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