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르카 자체만을 논하자면, 다시 가고 싶은 곳은 결단코 아니다.
물론, 섬의 외곽 마을 쪽으로 나가면 아기자기하고 평화로운 장소도 여럿 있다. 그 곳들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말인 즉슨, 마요르카 중심인 '팔마'는 썩 훌륭하지 않다는 거다.
(개인적인 불호일 수도 있어서 함부로 평가할 순 없지만) 굳이 아시아에서 먼 길 떠나 도착할 만한 행선지인지 의문이 든다. 내가 그 섬에 체류한 열흘동안 보지 못한 다른 숨겨진 매력이 있다면 정말 죄송하지만..
이렇게까지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그 곳을 갔던 기간이 내 추억상자 속 소중한 기억으로 들어있다는 점은 재밌다.
그 이유는 사람. 그 섬 안에서 좋은 친구들을 여럿 만났기 때문.
사실 내 성격이 정말로 내향적이고,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결국은 혼자 있는 상태를 가장 편하게 느끼기 때문에 이번 여행은 남 눈치 안보고 혼자서 사색과 고독과 외로움의 한 가운데에 스스로를 놓기로 했다. 어학원에서 받았던 남모를 압박도 다 던져버리고 오롯이 혼자로서 말이다.
그런 나에게 마요르카는 사실 조금 부담스러웠다. 특히 호스텔 도미토리 룸 내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연말 기간에 마요르카라는 각자의 이유로 이 섬으로 와, 도미토리룸에 묵는 사람들.
아마 사정이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모두 혼자였다.
이런 특별한 기간에 혼자라는 건, 누군가를 필연적으로 원하기 마련이다. 특히 서양권은 크리스마스-연말이 우리보다 더 중요한 이벤트이지 않은가.
우연찮게 비슷한 기간에 매우 사교적인 인도여자아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나와 양 극단에 서있는 사교성. 아무리 피하려해도 굽히지 않고 들이대고 들이대는 그 매력에 나중에는 두손두발 다 들었다. 어찌보면 귀엽기도 하고..
그 아이가 계기가 되었는지, 다른 룸메이트들과도 안면을 트고, 같이 일정을 맞추기도 하면서 서서히 함께 다니는 시간이 늘어났다.
처음 며칠 간은 혼자이기 위해 핑계를 대고 홀로 숙소를 나섰고, 그 이후에는 시간을 맞춰 저녁이라도 같이 먹거나 아침만이라도 함께 했다. 그 인도친구가 떠나던 날에는 하루종일 동행하고 정류장까지 배웅도 해주었다.
서서히 마음의 문이 열린 걸지도.
열흘이나 고독을 씹어먹기에 내가 마음이 약했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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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친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영어를 매우 잘하고 (아마도) 학력도 높아서 블루컬러 직군에서 일하고 있는 듯 하다. 독일의 뮌헨이라는 살기 좋은 도시에 머물고 있는데, 월급도 높다고 들었고 야망과 포부도 다부진 아이라서 명문대에 들어가려는 열의가 어마어마했다. 인도도 한국만큼 학벌과 좋은 직업에 대한 욕심이 많다고 말하던데, 본인이 그 점을 내게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독일에서 아시안으로서, 혹은 외모로 받은 차별 등을 이야기하면서도, 본인에 대해 다소 자학에 가까운 유머를 선보이는 매력이 돋보이는 친구. 푼수끼가 있으면 귀엽게 보이는 데 딱 그런 타입이었다.
늘 재잘재잘 말하고, 내가 쓰는 화장품이나 K-BEAUTY에 매우 관심이 많아 보였다.
가끔 보이는 외로운 얼굴, 특히 내가 동행을 거절하고 혼자 다니다가 우연히 보았을 때의 그녀의 얼굴이 가끔 생각이 난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타지에서 차별받으면서 일하느라 얼마나 외롭겠는가. 그녀가 잘될거라고 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가 오기 전 만난 사람도 있다.
터키 출신으로 역시 독일에서 일하고 있다는 중년의 연구자(혹은 학자)는, 아이를 본국에 두고 잠시 몇개월 간 타지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연구 목적이었던가, 공부 목적이었던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않은 듯 나와 잠시 동행하면서 내 리드대로 따라 와주고 반응해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아마 평생 공부만 내리 했던 듯, 사회생활(교류와 만남)을 많이 못한 게 아쉽다고 했다.
여행의 기회가 흔치 않다며, 무려 마요르카를 하루만에 떠나는 기염을 토했다. 아주 짧은 기간동안 많은 도시를 보겠다고 했다. 아마 다른 도시들도 하루만 체류한다고 했던가.
스위스에서 온 중년의 여성은, 마요르카에 오게된 경위가 남달랐다.
친구와 연말에 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사실 유사한 지명의 다른 지역을 예약했어야 했는데 실수로 이 곳을 예약했다고.
캔슬이 안되어, 그냥 각자 여행하기로 했다는데, 그 유사한 지명이 도저히 기억이 안나네.
이 에피소드를 듣고 다들 박장대소 했었는데.....
그 분은 조금 독특한 사람이었다. 나에게 실례가 되는 발언(아시안 차별적인 발언인데 악의 없이 하는 '눈찢기' 제스처와 함께..)을 눈치없이 뱉고, 나의 '그 말은 좋은 의미가 아니야' 라는 나의 지적에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순수함이랄까.
어쩌면 실수로 혼자 여행하게 된 것이 아닐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떠나는 날, 아침부터 일어나서 포옹하고 인사해준 걸 보면 나쁜 사람은 결단코 아니다.
내 연말을 함께 불태워준 중국여자아이가 사실 가장 마음에 남는다.
그녀는 어떤 이유로 중국에서 나와 파리에 정착한 친구인데, 세련된 패션, 남다른 배려심과 매너, 매력적인 웃음과 죽이 척척 맞는 대화 등으로 내게 초반부터 호감을 샀다.
그래서 이 친구와는 만난 다음날 하루종일 붙어다녔다는 사실..
함께 거리를 열심히 걷고, 빈티지 샵도 구경하며, 식사하고 술마시고, 중심가가 클럽화된 연말의 밤을 함께 불태웠다.
펍도 가고 바다도 함께 바라보며 '비포 선라이즈'을 체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
아마 남자아이였다면 첫 눈에 반했거나, 다시 못 만날 인연이라고 받아들였을 지도 모른다.
대화를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이 곳 외딴 섬에 한국인과 중국인이 우연히 만나 함꼐 12월31일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느끼게 해준 아이.
아침이 다되어 숙소로 들어와 몇 시간 잠도 못잤으면서, 내가 떠나는 시간에 침대에서 내려와 포옹과 인사를 해주던 착한 아이.
내가 중국인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이유가 그 아이 덕분이다.
(그 뿐만 아니라 마요르카의 숙소에는 젠틀한 중국인이 여럿 있었다)
초반에는 메신저로 교류를 이어갔으나(그녀 때문에 나는 그 메신저 DM을 처음 사용했다), 나중에는 연락이 끊겼고 그렇지만 슬프지는 않다.
그 하루로도 충분하다. 서로 거리가 멀어서 더 이상 만나기도 어렵고. 그 하루동안 교감한 것만으로도 정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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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만남들 때문에라도 마요르카를 잊지 못한다.
그 시기에 마요르카 땅을 밟고, 소중한 스물여덟의 연말연시를 그 곳에 발 묶였던 것이 행운이라고 여기는 것은 오로지 그 만남들 때문일 것.
내가 바라마지않던 '고독과 사색' 대신에 '교류와 만남'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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