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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스페인의 네번째 도시, 그라나다(GRANADA)

kimkiwiKKK 2019. 10. 4. 09:13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내가 짰던 스페인 루트에 문제가 있었다.
내가 어떤 루트가 경제적으로 이득인지에 대해 계산을 하는 동안 실수를 한거지.

나는 많은 루트를 검색해본 뒤, 바르셀로나-말라가-마요르카-그라나다 라는 일정으로 결정을 내렸었다.
이게 가장 저렴하게 나올 수 있고, 한 지역에서 과하게 체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었지.
나중에 내가 했던 기초적인 실수를 깨달았다.
모든 동선을 항공권 기준으로 했다는 것을.
사실 말라가와 그라나다는 가까운 도시라, 버스로 이동하는 것이 보편적인 동선이었던 것이다.
여행 한두 번 해본 내가 아닌데, 이 점을 간과한 것은 뼈아픈 실수이자 준비 부족에 대한 댓가일지도.
후회해서 도움될 건 없고, 이미 여행은 잘 끝냈으니 웃으며 넘기는 작은 시행착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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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는 일단 춥다.
스페인, 그것도 남부지방이라 서늘한 기온일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쌀쌀했다.
알아보니 원인은, '시에라 네바다'라는 얼음산의 영향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프리카 대륙과 가까운 이 곳이 이렇게 선선할 수는 없지.

시내로 들어와 캐리어를 끌고 그 좁디 좁은 길, 게다가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호스텔로 들어섰다.
호스텔은 그라나다 구시가지, 궁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좋은 위치의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었다.
시설도 마음에 들고, 독특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매우 이른 시간에 도착했기에, 그리고 그 전날(12월31일)을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쪽잠만 청했던 지라, 체크인 시간이 되자마자 숙소에 들어가 부족한 잠을 청했다. 몇 시간이나 잤던 지 기억도 안날 정도지만, 그 때는 정말 피로해서 죽을 지경이라 침대는 너무나도 아늑했다.

그렇게 1월1일을 보내야 했다. 그날 체크인 시간 전에 도착해서 터키식당에서 케밥을 먹었고, 잠을 내리 잤고, 그라나다의 첫날은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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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는 매력적인 도시였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그 때 마침 방영 중이었던 지라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드라마가 나오자마자 바로 관광을 몰려오지는 않았다. 그럴 거리도 아니고.
이 곳을 방문한 유일한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궁전 방문은 도시를 걸어서 본 후에 하고 싶어서, 2일차 늦은 시간으로 예약을 해두었고, 따라서 2일차는 여유롭게 '걷기여행'을 시전할 수 있었다.
유명한 츄러스 카페에 가서 츄러스에 코코아 조합으로 마음이 사르르 녹고, 그 후에는 평온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마침 새해라서 행진 퍼레이드를 볼 수 있었다.
어렴풋이 들은 바로는, 무어인들에 지배받았던 이 곳 지역이 그들을 무찌른, 그런 역사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행진이라고 했다.
시내 번화가 큰 길에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나도 그 인파 속에 잠시 끼어있다가 너무 힘이 부치고 기약이 없는 시작에 그 그 무리에서 간신히 빠져나와야만 했다.
그리고는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했다. 나중에 퍼레이드를 보려했던 중심가로 돌아왔더니 퍼레이드는 이미 떠난 듯 보였고 나도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나의 메인 이벤트인 궁전 방문이 남아있기 때문에.

알함브라 궁전은 정말정말 규모가 크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공간에 호화로운 궁전을 지어놓았다.
이슬람 무어인들이 이 곳을 지배하고 처음에는 청빈한 생활을 했지만, 말기에 다다를수록 그 스스로의 규율을 무너뜨리고 이렇게 호화로운 궁전을 지어놓고 향락을 즐겼다고 한다.
호화판 궁전과, 지배세력의 퇴각,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먼저일지는 모르겠지만 사치스러운 궁전을 짓는 세력치고 휘청대지 않은 케이스를 보기 드물지 않았는가. 이 궁전을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두번째 도시였던 말라가에서도 무어인이 만들어 놓은 궁전 겸 요새(알카사바)를 보긴 했는데, 그 곳은 정말 아담하고 소박한 편이라는 걸 그라나다에서 새삼 다시 느낀다.
이동하는 것도 일이었다. 대체 이 큰 궁전에 뭘 채워놓고 산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오히려 말라가의 알카사바가 취향이었다. 규모는 적당하지만 옹기종기, 관람객이 적어서 조용하게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었던 곳. (작은 집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선호가 반영되기도 했음)
그래서 알함브라 궁전에서는 빠른 걸음으로 힘차게 공간을 훑어보고,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그 날 저녁은 룸메이트인 미국인 친구와 함께였다.
그녀는 매우 철두철미하고 계획적인 (미래의) 커리어우먼 같은 포스를 풍겼는데, 맥북으로 매번 방에서 무언가를 작업하고 있었다. 
먼저 내게 함께 식사할 것을 청했고, 그녀가 트립어드바이저 리뷰를 꼼꼼히 읽고 비교하여 예약까지 해두었다는 그 굉장한 레스토랑에 동행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여행객으로 곧 이란의 테헤란으로 인턴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말 성숙했고,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도 어른스러워서 함께 대화하고 지내는 것이 잘 맞았다.
원어민이라 나랑 대화하려면 내 부족한 영어실력에 힘들법도 한데, 계속 같이 다녀주는 것만으로도 성격을 알 수 있다.
이 날 저녁은 역시 퍼펙트 했고(맥북으로 서칭한 결과일까), 다음날 일정에도 동행하기로 약속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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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그녀와 저녁 전까지 일정에 동행했다.
결과적으로 그녀와 나의 여행 스타일이 맞지 않음을 깨달았던 하루였다.
그녀는 학구적이라 그라나다의 모든 박물관(아주 작은 가정집 규모의 박물관까지)을 섭렵하려는 다부진 계획이었고, 나는 내 관심사 외의 박물관이라면 그 것이 메인 코스 중 하나라해도 패스하는 자유로운 타입.
늘 그렇듯이 내가 그녀 취향에 맞춰 다녔다. 
그 박물관들이 가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성향이 워낙 다르다보니 나중에는 살짝 지치기도...
같이 다니는 즐거움 대신에 잠시 내려놓았던 자유.

게다가 점심을 먹을 곳을 찾지 못해 난항을 겪었다.
그녀 말로, 자신이 레스토랑을 예약하는 이유가 '제 때 식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성격이 변한다'라고 전날 저녁에 설명했기 때문에, 그녀가 정말로 야수가 되어 으르렁 댈까 걱정되었다.
다행히 그녀는 자제심이 굉장한 지, 잘 참아냈고 엄청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그 날 왜 점심을 제 때 못먹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고르고 고르다가 그렇게 됐나?)

저녁에는 그녀와 헤어지고, 숙소에서 전날 만난 일본인 친구와 식사를 동행했다.
이 식사는 내가 먼저 청한 것으로, 이 때부터는 내가 일정을 리드했다.
식당을 내가 정했고, 그 곳까지 걸어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정말 'THE 일본인'의 전형적인 존재로, 정중하고 격식을 차리는 20대 후반의 사회인 같은 느낌의 청년이었다.
서로 계속 경어를 썼고, 여행자들끼리니 편하게 친구처럼 대화하는 건 그에게 없었다.
식당에 도착할 때 즈음에야 그가, '사실 전 술을 마시지 못합니다'라고 고백해 슬펐지만 괜찮아. 나만 마시면 되지 뭐.

식당은 로컬밥집 같은 느낌이라 정말 친절했고, 영어를 못하시는데도 나에게 '가능한 메뉴'를 일일히 찝어주고 친절히 응대해주었다.
나만 취해서 보기에 추했겠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는 어느 새 나에게 은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그의 여행이 '굉장한 인기남'이 되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매력적인 남자가 되기 위해 세계여행을 한다'.. 멋진 생각이다. 굉장한 발상.
세계 각지를 돌면서 매력적인 요소를 흡수해서 멋진 남자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각 국의 인기남의 매력원인에 대해 궁금해하며, 나에게도 한국남자의 매력을 알려달라고 했다. (한국남자는 체격이 다부진 듯 하다며, 군대 때문인거냐며...)
그 날이 그와 이야기한 마지막 날이어서 그 이후의 소식을 알 순 없지만, 그가 부디 세계의 매력남의 인기요인을 배워서 일본에 금의환향했기를 바란다.

그라나다는 비교적 짧은 일정으로 머물렀다. 고작 삼일 밤을 보냈을 뿐.
사실 그라나다 이후 곧장 포르투갈 남부로 넘어가고 싶었다. 
한 도시에서 평균 일주일 이상의 체류를 하면서 이동이 적은 여행을 계획했었기 때문이지만, 귀가 얇아서인지 주변 많은 이들이 '세비야가 정말 최고다'라고 말하는 데 솔깃해졌다는.....
그래서 포르투갈에 가기 전, 세비야에서 잠시 머무르기로 했다.
대체 뭐가 그리 좋기에 세비야, 세비야 타령을 하는지. 내가 보고 '아냐 세비야는 쏘쏘했어'라고 평하는 것과, 가보지도 않고 '별 거 없겠지' 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니까 말야.
그리고 그동안 도미토리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세비야에서는 호화롭게도 에어비앤비로 집을 통째로 빌려 지내기로 했다.
한달이 넘는 배낭여행에 '쉬는 시간' 이란 게 필요했기에.

저런 차들이 좁디좁은 길로 들어서면, 보행자는 피해주어야 할 정도의 협소함. 그리고 퍼레이드를 목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
알함브라 궁전을 나를 기진맥진하게 했을 뿐. 그 결과 사진이 이렇게밖에 나오지 않았다니.
산기슭에 있어서 전망이 좋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오면 자주 보는 이슬람 양식 문양의 타일들, 그리고 오른쪽은 그를 기념품화 한 타일마그넷. 사오고싶은 게 너무 많았으니 앞으로 여행이 많이 남아있어서 자제했다.
미국인친구 메리가 신중히 예약했던, 그 고급레스토랑. 저렇게 다 먹고, 술까지 마시고 50유로이니 나쁘지 않다. 일단 맛이 훌륭했어.
메리와 함께 다닌 박물관 투어 일정 중 찍은 사진. 박물관(전시관)에서는 사진을 찍지 않았나보다.
힘겹게 얻은 점심. 술도 마셨고. 오른쪽 사진은 일본인 친구와 갔던 로컬 레스토랑의 메뉴. 일본인친구가 시킨 음식이 더 맛있었는데 나랑 쉐어하지는 않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