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행 목적에 대해 십년 가까이 고민을 했다.
스스로가 '여행에 미친' 사람은 결단코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십대의 많은 시간을 여행하는 데에 할애한 이유는 뭘까.
자문해보아도 그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해, 누군가에게 여행을 가는 이유를 설명할 때 대충 둘러대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서야 알았다. 나의 여행의 목적.
'익숙한 공간에서 떨어져나가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관광지를 순회하는 날에는 피로가 쌓이고, 현지인들처럼 마트나 동네를 돌아다니며 주민 행세를 하고 다니는 날에는 힘이 뿜뿜 솟아났던 거구나.
나에게 어학연수나 워홀은 '(비교적) 장기거주', 여행은 '단기거주'였던 셈이다.
어느 순간부터 유명 관광지,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을 의무로 삼지 않았다. 원하면 가고 아니면 말고.
내가 나고 자란 동네의 대형 미술관조차 나는 가보지 않았으니 다른 동네에 살게 된다 하더라도 그래야함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인생의 모토는 '여행자처럼 살고, 동네주민처럼 여행하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 스페인-포르투갈 여행도 그 모토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그 기준에 최대로 부합하는 장소는 단연 '리스본'. 이 곳이 내 여행의 종착지이자, 다시 태어나면 살고 싶은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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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도시들을 다녀온 내가 왜 리스본을 '다시 태어나면 살고싶은 도시'로 꼽았느냐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딱 한가지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그냥 좋다. 그냥. 특별히 두드러지는 이유 없이.
처음 2~3일은 "여기 진짜 서울같아. 덜 바쁜 서울."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도시 곳곳이 서울 일부와 닮은꼴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테주강(혹은 TAGUS RIVER 타구스강)의 전경이 왠지 한강과 닮았고, 어느 박물관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DDP)처럼 생겼으며, 규모나 강변 곳곳의 다리, 라고스에 비해 비교적 바빠보이는 직장인까지.
그런데 시간을 두고 관광지 부근도 가보고, 이곳저곳 발로 뛰어 본 도시는 훨씬 다채로운 매력으로 풍부한 도시였다.
군데군데 보이는 각종 박물관과 문화시설의 폭, 언덕이 정말 많은 지형으로 유명하지만 그래서 걸어서 보는 재미가 있는 곳, 생선이 풍부한 지리적 조건을 이용하여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생선요리, 저렴하지만 맛은 확실한 가지각색의 와인,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친절한 현지인들까지.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라는 생각이 하루하루 시간을 더해갈수록 깊어져갔다. 점점 확신에 차기 시작했다. 다음 생에 내가 태어날 곳, 내 고향이 될 곳은 바로 여기야.
여행 내내 설레고 떨리는 감정을 받은 곳은 잉글랜드지만, 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가는 도시는 리스본이라고.
그 곳에서 내가 보낸 시간은 여행자로서의 관광이 아닌, 조만간 정착할 예정인 어느 아시안의 사전답사랄까.
이 거리엔 뭐가 있고, 어느 마트가 좋은지, 어느 영화관이 내 취향인지, 이 잡화점은 내 취향의 어떤 물건을 파는지, 저 동네는 거주하기에 평화로운지, 만약 이 곳에 정착한다면 어느 아시안마켓에서 한국식료품을 얻을 수 있을 지 등등 마치 정착할 것마냥 열심히 들쑤시고 왔다.
에그타르트를 물고 여기저기 걸어다니며 보느라 하루에 3만보 이상을 걷는 날이 허다했다.
덕분에 '걸어서 하는 여행'이라는 취지의 절정을 이 곳에서 맞이했다는 점도 기쁘다.
혹시 모르지. 내가 정말 포르투갈로 돌아갈 지도...?
일반적인 관광객들은 리스본, 포르투 둘 다 가신다고 한다. 그리고 포르투 선호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다.
나는 한 도시에 오래 묵고 싶은데 포르투갈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20일 정도밖에 없어서 10일을 모두 이 도시에 쏟았다. 둘 다 보는 대신에 한 곳을 오래 보고싶어서. 스무살이었다면 포르투로 향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스스로 뭘 더 원하는 지 아니까.
(남들 말에 솔깃해서 세비야 안갔으면 포르투 갔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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