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일상처럼.../19 통영, 단기 거주

#1-1 더블린에서 시작된 여행의 끝은 통영에서 - 2018년 봄의 통영 첫 방문기부터

kimkiwiKKK 2019. 10. 9. 12:01

통영을 참 좋아해요.
이렇게 말하면 통영이 고향이라던가, 통영에 장기 체류한 경험이라도 있는걸까 싶으시겠지만 놀랍게도 현재까지 딱 두번 가봤어요............... 말하고도 부끄럽네요.
하지만 횟수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첫 눈에 반해서 결혼하기도 하는걸요?
제가 통영을 좋아하게 된 계기 역시, 한마디로 집약해보자면 '첫 눈에 반했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어요.

어떤 도시에 첫 눈에 반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에겐 자주 일어나지 않는 특별한 일이에요. 왜냐면 여행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여행할 때 '그 도시에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오래 살펴보는데 그럴 경우 단점이 '스쳐지나가는 여행자처럼 좋은 점만 보고 떠날 수 없다'는 거죠.
평균 하루 여행비용을 대략 10만원으로 잡는데, 그 정도 금액을 매일 쓸 수 있는 환경이라면 그 어느 도시든 천국이 아닐리가 없는데도 그래요.
"이 도시는 이건 매력적이지만 다른 면에 있어서는 살기 아쉽다" 라는 식으로 끝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죠.
(더블린이라던가, 아이슬란드라던가....)

그런데 첫 눈에 반해버리면 저런 건 아무 의미가 없게 되더라구요,
제가 직장이이던 2017년 어느 봄, 저희 회사를 이용해주시는 소장님의 지인이자 손님께서 점심을 사주셨어요.
회사가 당시 서울시청 근방이었는데 그 근처에 저도 모르는 오래된 식당이 하나 있더라구요.
'충무집'이라는 곳인데 아시나요? 아마 서울에서 오래사신 분들, 제철음식 좋아하시는 미식가들께서는 아시겠네요.

https://store.naver.com/restaurants/detail?entry=plt&id=11718809&query=%EC%B6%A9%EB%AC%B4%EC%A7%91

 

충무집 : 네이버

리뷰 166 · 2TV생생정보 7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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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도 생소하지만, 메뉴는 더 낯설었어요. 도다리 쑥국이랑 멸치회무침이라니. 그게 대체 뭐죠? 멸치는 반찬으로 먹는 쬐깐한 애들만 익숙하고 도다리는 평생 접해보지도 못했거든요. 그 때, 가격에 한 번 놀라고 멸치회무침의 맛에 두 번 놀래서 사주신 손님께 감사인사를 재차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 분이 계획을 여러 번 바꾸셔서 사실 절 힘들게 했었는데 그게 싹 잊혀지는 맛이었어요)

다음 해 1월31일부로 회사를 퇴사하고 자유의 몸이 되었어요.
어학연수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3개월 정도 놀고 있었죠. 카페가서 영어컨텐츠를 듣는다니 뭐라니 했지만, 사실 별 거 하지 않았어요.
4월 어느 밤에 방에서 뒹굴고 있는데 갑자기, '도다리쑥국과 멸치회무침이 먹고싶다!'는 생각이 번쩍했어요.
신기하죠. 그 밥 맛있게 먹은 후 까맣게 잊고 잘 살았는데, 다음 해 봄에 다시 번쩍 떠오른다는 게 말이에요.
그 당시에 도다리쑥국은 그다지 인상에 남지도 않았었는데 일년 후에 머릿속에서 그 모습이 생생히 재생된다는 것도 웃기네요. 여하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서울의 도다리쑥국집을 검색했는데, 다들 1인분은 안되는 거 같았어요. 전 서울에 친구가 없고, 저런 부류의 음식에 매력을 느끼고 같이 가줄만한 지인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서 곤란했어요. 게다가 가격이 워낙 비싸다 보니, "에이 차라리 저 금액이면 통영을 가겠다!"라고 말을 뱉었는데, 며칠 뒤 정말로 통영에 도착해 있었답니다. 하 지금 생각해보아도 정말 충동적인 결정. 그날 밤에 호텔예약사이트 들어가서 바로 예약해버리고 버스까지 예약해버렸거든요. 제가 늘 이런 식으로 매사 결정해버리는 스타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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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 도착해서 통영케이블카를 타러 갔어요.
다도해가 한 눈에 보이는 게 전망이 진짜 좋더라구요. 탁 트인 전망 보면서 좋은 공기 쐬면서 늦은 점심메뉴 생각에 골똘해있었던 거 같아요. 식사 전에 너무 힘을 빼면 안되니 등산은 따로 하지 않고 조금 거닐다가 느린 우체통에 엽서를...(앗 내 엽서. 그러고보니 뭔가 보낸 거 같기도 한데 아무것도 온 게 없네. 지금 생각났어요.......) 보내고, 강구안으로 돌아와서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마음에 드는 벽화 따위를 찍었죠. 길가에 새겨진 백석 시인의 시도 찍고. 읽고. 눈에 담고.
체크인 시간 딱 맞춰서 호텔에 갔더니 친절하신 직원이 방을 여러 개 보고 고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다 똑같은 구조이긴 했지만 전망이 조금씩 다르니까 한 방을 골랐고, 나중에 주인이 오시면 키를 주시겠다고 하셔서 짐만 내려놓고 바로 강구안으로 나갔습니다. 
솔직히 고민 많이 했어요. 통영은 나홀로 여행객이 밥을 먹기에 제약이 있는 메뉴들이 많더라구요. 혼자서 가시는 분들 뭐드시나 엄청 검색해봤는데 카레나 1인메뉴가 수월한 곳들을 가시는 듯 했어요. 저도 막 가서 "저 혼자인데 메뉴 해주실 수 있어요??"라고 당당하게 묻고 다니는 게 아직은 안되더라구요. 소심하게 검색이나 하다가 찾은 곳이 중앙시장의 '동광식당'이라는 곳이다.

https://store.naver.com/restaurants/detail?id=12883946

 

동광식당 : 네이버

리뷰 402 · 찾아라맛있는TV 5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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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혼자서 드신 후기도 간혹 보이고, 숙소가 서호시장 바로 초입이라 걸어서 금방이었죠. 저는 그 때 식사하고싶어 안달난 상태였으니 멀리 갈 기력도 없고 차량을 빌린 것도 아니라 어딘가로 찾아가기도 번거로워 저 곳이 딱이었어요. 

늦은 점심시간이라 손님은 거의 없었고, 혼자 오신 아저씨가 식사하시면서 사장님과 담소를 나누고 계셨어요.
저는 애타게 찾던 도다리쑥국 대신에 성게비빔밥을 선택했어요. 성게도 좋아하고, 그 집은 메뉴에 복국이 딸려나온다고 해서 쑥국 대신 비빔밥으로 한거에요.

동광식당의 성게비빔밥. 비빔밥보다는 복국이 훠얼씬 맛있고 강렬했다. 멸치회무침이 반찬으로 나와서 좋다.

혼자 왔다고 부담스럽지 않았던 게, 반찬을 적당량 담아서 주셨고 편안한 분위기의 식당이었어요. 물론 시간대가 3시 정도여서 북적이지 않아서 그런 점도 있죠.
멸치회무침을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맛볼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국으로 나온 저!!! 복국이 기가 막혀요! 복국이란 거 처음 먹어보는 데 세상 신기한 맛. 평소 국을 잘 안먹는 나조차도 자꾸 들이키게 되는 시원한 맛. 차갑지 않은 따뜻한 국인데 시원하다고 표현하면 외국인들은 혼란스러워 한다죠? 한국분들은 다 아실거에요. 
제가 복국은 초면이라 어디가 더 맛있고 어떤 복국이 훌륭한건지 비교는 못하겠지만 저기 정말 좋았어요. 비빔밥은 솔직히 쏘쏘했고, 다음에 또 가게 된다면 복국을 시켜보고 싶을 정도에요.

밥을 만족스레 먹고, 배를 통통거리며 숙소에서 먹을 오미사꿀빵 사러 갔어요.
서울에 있을 때 다이어트 중이었는데 여행 중에 다이어트한다고 특산품 안먹고 참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거리낌없이 꿀빵으로 달려갑니다.

여기도 숙소 바로 뒷골목 어느 길에 위치해있었는데, 중앙시장에서 호객하던 꿀빵집들보다 저런 동네 빵집 같은 무던함이 전 좋더라구요. 어느 한 켠에 조용히 위치해 있었는데, 문 앞에 쳐져있던 방충망도 귀엽고, 조용하던 가게 내부도 마음에 들었어요. 10개 단위로 파셔서 저리 많이 사게 되었지만 결국 다 먹었어요. 지금 보니 또 침넘어가네. 달달한 거 좋아하시는 분들은 드셔볼 만한 간식인데, 요즘은 단 거 안드시는 분들이 많아서 선물로 사가기에는 조금 부담이 되는 그런 특산품이에요. 명색이 꿀빵인데 꿀을 빼달라고 할 수도 없고. 가끔 이런저런거 생각안하고 옛날 맛의 간식이 생각날 때, 저는 저 꿀빵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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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서문시장 바로 맞은 편의 충무비치호텔.
https://site.onda.me/20553

 

통영 충무비치호텔

해수욕장 주변, 가족/커플 여행으로 제격!

site.onda.me

사장님과 직원분이 친절하시고 위치가 정말 좋아요. 커플끼리 오붓하게 시간보내거나 예쁜 숙소에서 쉬고 싶으신 분들은 실망하실 지 모르지만, 옛날 모텔 혹은 오래된 지방 관광호텔 정도의 저렴한 숙소 찾으신다면 딱이에요.
제가 수많은 여행 경험하면서 저렇게 번화가 근처에 자리잡아본 적도 거의 없을 건데, 확실히 편하긴 편해요. 뭐 하다가도 들어와서 쉴 수도 있고, 쉬다가 또 마음 내키면 잠시 나갔다 올 수도 있고.
(예산의 문제로 저의 숙소는 늘 외곽. 아니면 중심지에서 도보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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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좋은 기억들과 더불어 제가 좋았던 점은, 통영이 문학의 고장이라는 점이에요.
박경리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고, 여러 소설의 배경이 되었기도 했죠. 백석 시인도 이 곳에서 시를 남겼고, 그래서인지 통영시 자체가 문학적인 이미지를 어필하고, 서피랑 계단에 소설 속 글귀나 박경리 작가의 말씀도 새겨져 있어요. 그것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동네 길거리에 느닷없이 시가 새겨져있거나, 심지어 벽도 아니고 길바닥에 새겨져 있는 곳도 봤어요. 강구안에도 그렇고 어느 버스정류장 근처에도 그랬고요. 
제가 동네서점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좋은 서점이 몇 군데 눈에 띄기도 해서 그 곳에서 책을 무려 일곱 권이나 사갔던 기억도 납니다. 백여 년된 역사의 적산가옥을 이용하신 카페를 찾아갔는데 그 곳 사장님이 제가 일기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오셔서 책방을 한 곳 추천해주셨어요. 마침 제가 카페 가는 길에 골목에서 보았던 멋진 한옥집이더라구요. 그래서 버스터미널 가기 전에 들렀는데 공간도 멋지고(숙박도 겸하심), 그보다 사장님께서 담담하고 간결하게 책을 추천하시면서 설명해주시는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저에게 책을 설명하라고 하면 막연해져서 막 이것저것 떠들다가 정작 중요한 부분은 놓칠텐데, 그 분은 침착하게 요점만 담백하게 설명하실 줄 아시는 분이시더라구요.
그 분에게도 매료되고, 그 분이 추천해주신 책들에게도 반해서 결국 일곱 권의 책을 수원까지 낑낑거리며 실어옮겼던 것도 하나의 추억이네요.

사실 이 여행기는 2019년 통영에 2주간 머물렀던 이야기가 아니에요. 2018년 2박3일로 첫 통영을 경험했던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목적과는 다르게 그 이야기를 한참 했네요. (심지어 글로 쓰라고 해도 막 떠들다가 정작 쓰려고 했던 2019년 여행기는 하나도 못썼네...)
이 때 제가 통영에 푹 빠져서 더블린 가서도 유럽여행 계획은 제쳐두고 한국 가면 통영부터 들릴 생각에만 부풀어 있게 되었어요. 스페인 동선은 안짜고, 통영가서 뭐는 꼭 먹고오자. 적어도 이 서점은 꼭 들렀다 오자. 

다음 글에서 2019년 통영에 잠시 머물던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다도해의 전망이 청명했어요. 바다도, 공기도 참 맑아.
강구안의 풍경. 아침마다 활발히 들어오고 나가는 배들을 보는 게 좋았어요. 삶이 보인달까. 생업전선의 출도착지에서 느껴지는 강한 에너지.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좋은데 가끔은 '내가 하는 일이 세상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는데, 여기서 오고가는 배들을 보면 힘차게 일한다는게 눈에 확 보여서 좋아요. 결실도 저렇게 눈에 보이구요.
동피랑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곳. 어린 친구들이 와서 사진찍고 놀기 좋은 곳.
저 커피숍이 궁금했는데 문을 열지 않으신... 동피랑 전망이 정말 좋아서 일몰을 기다렸어요. 사진은 일몰 전이지만..
동피랑 보고 내려와서 근처 유명 피자집에서 전복피자+베이직한 메뉴(기억안남) 반반. 제가 그 자리에서 바로 먹었으면 훨씬 더 맛있었을거에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은 시락국. 반찬을 마음대로 먹어도 되니 천국. 시락국도 맛있고 가격도 착해요. 오천원이었나?
문학의 도시답게. 이런 거만 봐도 가슴이 설레니 통영에 안 반할수 있겠어요?
서피랑은 글귀를 밟고 지나가는 재미. 계단에 경구들이 적혀있다. 전망은 동피랑보다 덜 트여있다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서피랑이 더 좋다.
서피랑에서 내려와서 어느 동네 골목길.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셔서 쓴 작품들을 걸어놓으셨다. 내가 제일 꽂힌 작품을 찍어봄. 멋있다. 스웩있어. 그리고 이즘(잊음)이라고 쓰여있는 저 곳이 제가 다녀온 동네서점이에요. 숙소로도 사용해보고 싶은, 잘 정돈된 한옥 독채였어요. 여기도 역사가 백년이 넘었다고 했나..
서점 이즘을 소개해주신 적산가옥 카페의 사장님. 제가 이른 시간에 방문해서 덕분에 사장님께 이 집의 유구한 역사와 파란만장한 개업과정, 적산가옥이라는 이유로 통영시로부터 외면받는 현실 등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어요. 케익과 커피도 맛있었어요! 친구와 날씨좋은 날에 또 가고 싶은 그런 곳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