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하면 '문학'이지. 박경리 작가님의 고향이기도 하고, 소설의 배경으로 통영이 등장함은 물론, 이 곳이 작가의 문학세계를 관통하는 큰 축의 하나이기도 하다. 전에도 언급했던 백석 시인 역시 이 곳을 배경으로 시를 썼다. 내가 좋아하던 예능프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에서 통영 편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이 도시가 근대 한국문학과 예술이 활발하게 발전하던 중요한 장소라고 했다. 문학도 문학이거니와, 윤이상 작곡가와 음악당, 전혁림 화가와 미술관, 이중섭 화가도 통영에서 2년 여 거주했다고 하며, 청마 유치환 작가와 청마문학관, 유치환 작가를 회장으로 통영 출신 예술인들이 결성한 통영문화협회의 존재감을 보더라도 이 지역이 얼마나 예술적으로 영향력을 뿜어냈었는지 짐작이 간다.
나는 사실 다른 분야에는 문외한이고, 그나마 관심이 있는 문학에 대해서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곳도 아닌 통영에서, 통영의 어느 한 자리를 잡고 진득하게 책을 읽어보고픈 욕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보고싶었던 책을 에어비앤비 숙소로 주문했다. (사실 귀국 전에 하려던 건데, 몸 상태가 안좋아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하룻밤을 책 없이 영화로 연명해야했다)
도착한 책은 전에 한번 올린 사진에서도 보실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누가 내게 통영을 언급하면, 자연스레 '김약국의 딸들'을 떠올릴 정도로 이 책을 인상깊게 읽었다. 마치.... 연로하신 할머니가 과거를 회상하시면서 이야기할 법한 시골 어느 바람잘 날 없던 부잣집의 흥망성쇠 스토리랄까. 어느 하나 제대로 풀리는 일 없구나, 싶은 집. 얘기하는 사이에 왠지 뒷담화가 되어버리는 남의 집 이야기를 읽어내는 기분이었다.
위에서 부터 회상해보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더 많이 알아가고싶은 생각에서 주문했다. '여행의 기술'만큼의 화력은 내게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역시 뛰어난 글솜씨와 통찰력은 이 때도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구나 싶었다. 토지는 1편뿐이라 그 작품의 매력을 다 알기엔 부족했고, 내 독서력의 한계로 만화로 대체했었던 기억이 난다. '어디서 살 것인가'는..... 번뜩이는 생각도 몇몇 발견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랄까. 주장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해서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보였다. '그해 여름'은 내 인생 영화 중 하나로 꼽힐 'CALL ME BY YOUR NAME' 의 원작이라 골랐고, 영화가 더 매력적이라는 결론을 자체적으로 내렸다. '무진기행'은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중 하나 읽고싶어서 고른 것. 안나 카레리나는 너무 길어서, 설국과 무진기행 중 하나를 고민한 결과 택했다. 한국에 오랜만에 와서 한국적인 정취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
통영에는 은근히 동네서점(독립서점)이 종종 눈에 띈다. 처음 왔을 때 갔던 '잊음'도 매력적인 공간이었고, 두번째 통영방문 때에는 '전혁림미술관' 옆에 자리한 '봄날의 책방'을 다녀갔다. 미술관 관람 후 다녀가기 좋은 위치였고, 책방 직원으로 추정되는 분께서 페소아에 대해서 한마디 덧붙여 주셔서 그 점이 인상깊었다. 아무튼 시리즈는 전에도 접한 적이 있어 덤으로 하나 구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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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싶어. 그냥 한 편 훑어보는 게 아니라 진득하게 며칠이고 책 더미에 둘러싸여 독서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다를 때 나는 파주의 지지향이라는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하곤 했다. 참고로 웹사이트는...
게스트하우스 지지향
지지향 / 게스트하우스 지지향 / 지혜의숲 / 파주지지향
www.jijihyang.com
금액이 저렴한 편은 아니라, 그리고 파주까지 가는 거리에 의욕을 상실하긴 했지만.. 그런데 생각해보면 통영만큼 글을 읽어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도시도 없는 듯 싶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내 평생에 이런 단기간에 저렇게 다양한 책들을 읽어낸 시기가 있었을까 싶은데..
어느 도시는 식욕을 돋우고, 어느 지역은 목가적인 자연풍경에 대한 애정을 샘솟게 하는데, 통영은 책을 맛있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와.. 진짜 힙하다. 홍대 저리가라. 왠만한 연예인 사모임 포스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세상 쿨함.
조선의 나폴리라 불린다는 언급이 나오는 '김약국의 딸들'을 드디어 실물 책으로 접했을 통영 2일차의 그 감동. 그리고 내가 통영을 보고간 적이 있어, 작가가 말하는 묘사를 상상이 아닌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감동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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