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특히 수도 더블린은 참 신비로운 곳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이 느끼는 건 아니겠지만, 주변의 대체적인 의견과 나의 느낌을 종합하자면,
약간의 애증? 증오까진 아니지만, 사랑하지만 어떤 점에 있어서는 마냥 좋지많은 않은 국가(도시).
여기가 외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왠지 익숙한 '한국'스러운 느낌. 금새 찾아오는 권태감. 지루함. 다른 유럽 도시로 가고픈 열망.
나의 개인적인 느낌을 조심스레 이야기해보자면, 일년 여 정도 거주하는 것은 참 좋다.
그런데 평생 여기서 살라고 하면, '도시의 번화함과 유럽에 대한 환상, 이국적인 도시의 매력' 등을 따지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더블린에 있으면서 농담으로 하던 말이 있는데, 가령 내가 다른 유럽국가(스위스나 스페인 등)로 여행간다면,
"언니! 나 지금 진짜 유럽 온 거 같아요!!"라고 더블린에 있는 지인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들도 이 말의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공감하셨었다. 독일에 간 언니도 나에게 이런 취지의 말을 건넸던 적이 있다.
평온한 주택가나 부촌을 제외한, 시내나 리피강 북쪽의 대체적인 동네의 경우에는 소매치기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생긴다. 한국에 살다가 더블린에 가서 그런 말을 들으면, "아무리 그래도 내가 털리겠어?" 쉽게 생각하지만, 주변에 털리거나 털릴 뻔한 경우를 너무너무 많이 봐서 징글징글할 정도다.
심지어 전화 중인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면서 쓱 뺏어가거나(자전거 타면서 양 손을 자유로이 둔 사람은 보통 소매치기이니 조심!), 들고있던 가방을 홱 잡아채거나 하는 경우가 다반사. 더 웃긴 것은 그들 대다수가 스킬이 뛰어난 전문 도둑이 아니라는 사실. 아무 기술도 없이 무작정 대로변에 떡하니 묶여있던 자전거를 통째로 가져가려다가 포기하고 가버린 소년도 보았고, 행인의 가방을 채가려다가 그 행인이 난리난리 욕하자 길가에 가방을 도로 던져버리고 가버린 소매치기 이야기도 들었다. 마치 소소한 일탈, 혹은 취미생활 정도인걸까.
카페에서도 절대 가방이나 소지품을 두고 다니면 안되어서, 화장실 갈 때는 짐을 다 들고 가거나 잠시동안 소유권을 포기하고 다녀오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다. (나의 경우에는 후자를 택했다. 운좋게 한 번도 털리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하지 않더라는..)
핸드폰을 절대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지도, 가방 앞주머니에 넣고 다니지도 말라고 집주인 아저씨로부터 단단히 주의를 들었었고, 뒷주머니에 넣거나 손에 쥐고 다닌다는 것은 곧 '이 핸드폰을 먼저 가져가시는 분이 임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취급되는 곳.
물론 유럽의 일부 국가들도 그런 경우가 있기는 하다만 아무리 오래 거주하더라도 적응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더블린 시내나 일부 지역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평온한 주택가나 부촌은 별개),
솔직히 거리가 쾌적하진 않다. 특히 더블린1쪽의 번화가들 곳곳이나, 다소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장소들은 더 그렇다. 좋게 표현하면 생활감이 물씬 풍기는 거고, 밤에 거닐면 스산한 기분이 든다고 표현하는 것이 최대한의 완곡한 묘사일거다.
유럽의 대표적인 관광지들에 비하면 도시 조경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래서 다른 관광지들에 비해 비교적 덜 조명받고 있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더블린에 대해 안좋게 말하면 하나같이 발끈하는 점이 재미있다.
더블린에 살다간 사람 중에, "더블린 다시는 오지 않을테다! 더블린 싫어!"라고 말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여기도 이제 끝이구나. 언젠가 다시 그리워질 때가 올 거 같다.. (지금 당장은 아니고)"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셨고 나 또한 그런 기분이었다.
앞에서 단점만 늘어놓았는데, 왜 그럼에도 아일랜드와 더블린을 사랑하는걸까?
(이 또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일단 사람들이 정말정말 친절하시다. 아이리쉬들 자체가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또 그런 친절함을 자랑스럽게 여기신다.
이방인에 대해서도 "웰컴 웰컴"하는 분위기고, 어느 상점가를 가도 내국인에 비해 서비스를 덜 받는다는 기분이 들게하는 곳은 본 적이 없었다. 외모가 누가봐도 아시안이라 응대를 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할 법도 한데, 일단 다가와서 인사도 기분좋게 하고 말도 걸고, 상품 소개도 하고. 어딜 가든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아이리쉬=친절'이라고 바로 연결될 정도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쉽게 마음을 열어주고 친절은 베푼다는 인상이 강하다.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소소하게 친절한 인상을 받은 경험이 너무나도 많아서 사람들은 정말로 나이스 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중에 어학원 선생님에게 들었는데, 아이리쉬는 초면부터 살갑게 굴지만, 다소 불만이 있어도 속마음을 잘 이야기 하지 않는 특성이 있는 민족이라고 하셨다. 아마 조금의 불편함이 있어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참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한국인과 유사한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어 심적으로 동질감을 느낀다.
술을 참 좋아하는 문화이다.
술에 한해서는 그들이 한 수 위 아닐까. 펍 PUB은 한국의 편의점 만큼이나 자주 눈에 띄고, 매우 이른시간부터 장사를 시작한다. 점심때면 이미 아저씨들은 맥주 한 잔씩 앞에 두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지금은 달라졌을 지 모르지만, 한 때 아이리쉬를 폄하하던 이미지가 '낮부터 술에 골아떨어져 비틀거리며 거리를 배회하는 가난한 이주노동자-특히 미국에서-' 였다고 한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제임스 조이스의 저서 '더블린 사람들'을 보면 이전 세대들의 척박한 환경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저자는 나중에 이런 묘사를 했던 점에 대해 사과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기록을 보면 성인이 되어 아일랜드를 떠나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단 두 번에 불과했다고.)
서양인들은 아이리쉬하면 '알콜에 절어있거나', '가난하지만 애만 많이 낳는' 등의 과거의 안좋은 이미지를 아직 다 버리지 못한 듯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호쾌하고 술 마시기 참 좋은 환경이었을 뿐.
맛좋은 맥주(일부 펍은 기네스 공장에서 바로 탭으로 연결되어 통에 담길 새도 없이 생맥주로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위스키(제머슨-제임슨-이 유명하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끝에 맴도는 단 맛이 인상적이다), 저렴하게 접할 수 있는 각종 와인들(산지와 거리가 가까우므로)까지 한국인에게는 천국이나 마찬가지.
밤 10~11시 넘으면 알콜을 구매할 수 없는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부어라 마셔라를 막기위한 방편인 듯) 미리 대짝으로 구매해두면 그만이니 뭐. 우리 집주인 부부도 늘 선물로 맥주 한 짝씩 올려보내주셨다. 아이리쉬-한국인의 훈훈한 이 광경을 보시라..
그리고,
일본에 지배받은 역사처럼, 아일랜드도 영국에 지배받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무려 약 700여년 간 영국에 지배를 받아, 지금은 아일랜드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일반인은 구사할 줄 모르고, 교사 자격증을 받으려면 어느정도 공부를 해야한다고 했다. 학교에서도 기초적인 아일랜드어를 가르친다고는 들었으나, 성인들과 이야기해본 결과 몇몇 단어 외에 제대로 아일랜드어를 읽고 쓰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영토가 한국처럼 남북으로 갈려있다. 영국이 아직도 북아일랜드를 영국령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비록 왕래는 자유로우나) 북아일랜드로 넘어가면 파운드화를 써야하고, 영국에서 넘어온 신교도들의 비중이 높아서 어느 지역으로 가면 유니언잭 국기가 어마어마하게 눈에 띈다. (북아일랜드는 21세기 초반에서야 간신히 투쟁을 멈추고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궁금하신 분은 '북아일랜드 블러디 선데이'라고 유튜브나 구글에 검색해보시기를...)
이러한 유사한 역사에서도 '아일랜드'에 대한 묘한 감정을 느끼었다.
아일랜드라는 국가는,
말로는 '재미없다, 심심하다'고 디스하면서도 그 말 안에 애정이 들어있는 그런 존재로 내게 남았다.
그들이 자국의 변덕스럽고 지랄맞은 날씨에 대해 매번 디스하면서도 애국심을 가지듯이 말야.
그리고 거주하면서 적응이 빨랐던 것도, 한국처럼 느꼈다는 점도, 애시당초 현지인들이 우리를 배척하지 않고 품어주었기 때문에 느꼈던 감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대륙은 이민자로 구성된 국가에 비해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들은 적이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아일랜드는 완벽하게 그 추측을 빗겨나간 국가이다.
오히려 인종차별 비스무리한 것을 겪었다면, 그 가해자는 아이리쉬이기 보다는 타국에서 이민온 같은 처지의 이방인인 경우가 다반사. (혹은 개념없는 청소년. 하이틴은 만국 공통 무서운 존재...)
내가 언젠가 아일랜드를, 더블린을 다시 방문하게 될까?
건강에 이상만 없다면, 인생이 순조롭게만 풀린다면 금의환향 하듯이 방문해서 이렇게 말할 듯 하다.
"아니, 더블린은 십수 년이 지났는데도 하나도 변한 게 없잖아??"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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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외 타 지역)
더블린 거주 시절에 다른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코크(제2의 도시), 골웨이(남쪽의 작지만 아일랜드 느낌 물씬나는 도시)가 인상에 남는다.
코크는.. 더블린보다 더 생활감이 묻어난다. 주택가의 아기자기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문도 삭막하게 갈색이나 탁한 색상으로 칠해져있고, 외적인 면만 보았을 때 또 방문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는 않는 게 사실이었다.
그에 반해 골웨이는 아일랜드스러움이 가득하고, 꾸불꾸불한 골목이니, 더블린에 비해 작은 시내이지만 그 매력은 무시할 수 없는 매력적인 도시로 기억하고 있다.
아마 다시 어학연수를 결정하라고 하면, 골웨이에서 한달 정도는 거주하고픈 마음도 있다. (더블린5개월+골웨이1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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