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 뭐냐고 물으시면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다.
사람. 한국에서는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과의 충만한 시간들을 더블린에서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계속 직장을 다녔으면, 부산에 사는 동생들, 나와 전혀 다른 업계에서 일하는 언니, 심지어 브라질이나 칠레, 일본 등에서 사는 사람과 시간을 공유하고 찐한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을까? 옷깃이라도 스칠 수나 있었을까??
한국의 번잡하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났기에 가능했을, 짧지만 농도 깊은 교류가 가장 큰 선물이다.
그들로부터 하나씩 하나씩 배워 지금의 '이긍정'의 일부로 체득되었기도 하고 말이야.
결국은 '사람'이 답이다, 라고 어느 여행이든, 어떤 해외에서 살게되든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인간관계가 정말 서툴러서, 일찌감치 그 부분은 포기했던 이런 나이지만, 그래도 결국 '사람'.
그들의 초상권이 있으니 사진을 올릴 수는 없고, 몇몇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를 적는 선에서 마무리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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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하우스메이트 언니 ㅅ은, 낯도 가리지 않고 먼저 다가와줘서 사람 사귀기에 소극적인 내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내 바로 앞 방에 지내고 있었고, 독서를 좋아하고 영어를 정말 잘하는 언니였다.
언니 덕분에 좋은 가게도 많이 가고, 어색했던 집주인 부부와도 좀 더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었다. 아마 언니가 아니었으면, 집주인 부부는 나를 '유령세입자'로 알았을 지도 모른다.
쑥스러워서 거실에 들르지 않고 방으로 쑥 올라가려던 나를, 언니가 불러주고 이야기도 같이 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고맙다.
좋은 책도 많이 추천받고, 영화도 추천받아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감사한 건, 하마터면 더블린에서 시크릿드링커(방에서 혼자 홀짝홀짝)될 뻔한 나와 자주 와인을 마셔주어서. 와인도 함께 마시고, 언니가 스벅에서 가지고 온 각종 무료 머핀, 시나몬롤 등과 함께 티타임도 가질 수 있었다.(언니는 스벅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쉐어하우스에서 살았지만, 누군가와 일상적으로 주방에서 만나 티타임을 가지며 담소를 나눈다는 것은 진귀한 경험이었다. 그 시간들이 전부 내게는 기쁘고 새로운 경험들으로 남았다.
어학원에서 만나 제일 먼저 친해진 한국아이 ㅅ은, 귀엽고 독특한 캐릭터였지만 나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지키는 아이였다. 같이 여행도 가고 어학원 친구들과 거리를 좁힐 때도 함께 있어주어서 안심이 되었지만, 내가 언니로서 도움을 주거나 챙겨주지 못하고 의지해서인지, 한국에 가서는 연락이 끊겨버렸다. 내가 언니로서는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사실을 이 때 알았다. (집에서는 누나이지만 그다지 장녀같지 않은 나였고, 사회에서는 막내라서 챙김받는 입장이라 '언니'로서 이렇게 챙겨주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나봐..)
브라질에서 온 ㄱㅂ는 사람을 잘 배려하고, 마음이 많이 따뜻한 친구였다. 브라질친구다보니 일을 하느라 많이 바빠보였지만, 나와 맥주축제도 가주고, 내가 마지막으로 더블린을 떠날 때도 시간내어 나를 만나주었다. 먼저 이거하자, 저거하자 못하고, 심리적 거리를 많이 좁히지 못했지만 이런 나라도 계속 친밀하게 대해주었고, 어른스러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열여덟살이라서 놀랐을 정도로 성숙하고 젠틀하다.
재밌는 에피소드는, 그녀와 내가 마침 가는 길이 겹쳐서 그날만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갈림길에서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녀는 당연하게 내게 볼 쪽쪽 하는 인사를 했다. 근데 내가 그 인사법이 어색한 것을 눈치 챘는지(싫었던 것이 아니고 익숙하지 않았을 뿐) 다음 날 내게 사과를 했다. 난 정말 좋았다고! 그 인사법으로 인사하고 싶었었어!
일도 정말 열심히 하고, 공부도 부지런히 해서 영어도 곧잘하고 유럽에서 잘 살수 있을 아이였다.
칠레에서 온 아이(이름이 기억안나네)는 같은 클래스로 한두달 정도 있었는데, 서로 먼저 다가가지 않았지만, 이야기할 거리가 생기면 선뜻 대화를 나누었던 걸로 보아 나랑 정말 비슷한 성향의 아이었던 거 같다. 마지막에 TIE시험 파트너였는데 그 때 인사를 나누고 그 이후로는 보지 못했다.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이야기 하자고 먼저 말도 걸고 할 것을. 어학원에 다니던 기간의 후반부에는 그런 것조차도 지쳤었다. 혼자 있고 싶은 날이 더 많았다.
그 외에, 초반 홈스테이 때 만났던 스페인에서 온 어린 소녀(나를 반 친구들과 첫 피크닉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펑키해보였지만 의외로 예절이 바른 아이), 러시아에서 온 소녀(함께 던리어리를 갔던 단기 체류학생), 일본학생 무리들(다 스물두살)과는 한식당도 가고, 일부와는 소풍도 가고, 송별회에 초대받기도 하였으며, 일본어를 까먹을 뻔한 나에게 일본어를 종종 쓸 일을 제공했다. (사실 이 점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해, 다음부터는 일본어를 쓴다는 사실을 먼저 밝히지 않기로 했다)
쉐어하우스에 뒤늦게 입주한, 동생 ㅈ와 ㅁ는 다들 성실하고 착하며 배려심이 깊은 아이들이었다.
나이차이 고작 한살이지만, 언니대우도 해주고, 나 곧 떠난다고 선물도 챙겨주고 밥도 만들어주고 정말 괜찮은 하우스메이트였다. 둘 다 부산에 거주하고 있어서, 부산에 가게되면 보려고 한다.
홈스테이 홈맘-홈대디-아들들도 정말 친절하고 호의적인 전형적인 아이리쉬 가족들이었고,
(그들 사정을 속속들이 알 지는 못하지만, 화목한 가정의 전형으로 보였다. 아들들과 자주 바다로 물놀이 가셨던 홈맘의 모습만 봐도 그렇다)
집주인 부부 ㅈ과 ㅋ은 최고의 집주인이었다. 한국에서 그런 집주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걸 케어해주고 마치 자녀들처럼 보살펴주었다. 먼저 함께하던 하우스메이트 언니들이 떠나고, 갑자기 그 집에 안좋은 일들만 연달아 몰아쳐서 집 분위기가 몇달 간 정말 안좋아서 그 때는 솔직히 힘들었는데,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한 점이 미안하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안좋은 일만 가득한 기간이었다...)
초반에 함께 살던 하우스메이트 언니들도 내게 작고 큰 영향을 주었다.
나와는 다른 성향의 분들이라, 한국에서라면 교류를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르는 분들인데 이렇게 같은 집에 살고 같은 더블린 공기를 마신다는 이유로 교류할 수 있었다. 간접적으로도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았다.
행정실에는 가지도 않았는데, 학기가 끝날 때까지 내 이름을 외우고 있었던 링구아비바 행정직원 분도 감사하다.
(그 분이 내 이름을 안다는 사실도 그 때까지 몰랐다. 행정실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어로 'STOMACH'을 뭐라고 부르냐고 물어봤던, 중국식당 조조스의 사장님도 감사하다. 당신이 제공해주신 그 막창볶음은 내 인생의 소울푸드로 지금까지도 그리워하고 있어요.
(근데 내가 먹은 부위는 스토먹이 아닌 거 같은데.. 제대로 알려드린 게 맞는지, 난 뭘 먹은건지 의심이 되기 시작한다. 그래도 맛만 좋았으니 됐어!)
내 착오로 주소를 혼돈스럽게 적어내서 체류카드를 제 때 못받고 스위스를 다녀왔을 때, '아직까지 카드가 안온거면 이민국을 다시한번 가봐라' 라고 걱정을 해준 입국심사관도 감사하다. 한국에서 입출국 할 때 그런 촉촉한 대화는 나눠본 적이 없는데(무서워보여서), 더블린 입국심사관은 그래도 뭐라도 한 마디 건네준다. 평생 입출국해본 국가 중에서는 가장 프랜들리한 편이다. 역시 더블린.
그 외에도 감사할 사람이 많다.
더블린 체류가 끝나고 스페인-포르투갈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 중에도 감사한 인연이 많은데(최고는 동생 ㅇㄹ!), 이건 더블린 이야기가 아니므로 나중에 다시 쓰는 것으로 남겨둔다..
나와 스친 인연들이 내 어학연수 기간을 빚어주었고 빛내주었다.
그 기간동안 내가 한 것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나머지는 그들이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주었다.
몇년 전의 나는, '인생에 인간관계, 교류 따위가 중요한 요소라고? 나는 그 부분은 버리겠어!'라고 단호하게 생각하던 마이웨이 인생이었다.
내 취약점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했던 나라서 그 말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버렸어. 내가 어마어마한 시간을 들여도 못 깨닫는 것, 못 느끼는 것을 때로는 어떤 한 사람의 행동 하나 혹은 지나가는 말 한마디로 얻게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여전히 혼자 잘 사는 독립적인 사람이지만, 주변에 남은 사람들에게 더 정성을 쏟고, 한 번이라도 먼저 연락을 하고, 작게나마 선물을 주면서 정없어 보이는 나를 조금 다르게 느끼도록 하고 싶은 마음은 더블린에서 만들어진 결과물.
늘 궁금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떤 점이 인생의 중요한 포인트일까. 난 뭘 향해 가야하는 걸까.
그 중 하나가 '교류', 표면적인 교류 말고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잘 하지 못해서 끝나버린 과거의 인연들에 미안한 마음은 갖지만 미련은 버리고,
앞으로 내 곁에 남아있는 좋은 사람들에게 잘하자고 오늘 또 한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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