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은 익숙하고, 동유럽도 경험해본 적이 있다.
그런 내게 생소한, 유럽 국가 중에 가보지 못한 곳 중 가장 흥미가 생겼던 나라는 단연 스페인과 포르투갈.
2018년에 다녀왔던 여행들 모두, 12월의 스페인-포르투갈 마음 먹었고, 그래서 한국에서 출국 전에 구매해서 캐리어에 담았던 책 중 하나가, 스페인의 대 건축가인 안토니오 가우디와 그의 건축물에 관한 것이었다.
(고작 일곱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었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책이므로, 이 책을 위해 다른 많은 책들은 캐리어에 탑승하지 못했다...)
당시 아일랜드는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더라도 스산하고 추운 더블린의 공기.
그런 아이리쉬에게 스페인은 '휴양지' 혹은 '도피처'로 받아들여진 듯. 여름에도 날씨가 좋지 않아 스페인이나 프랑스 근방으로 많이들 떠나시니.
스페인으로 향하는 나의 여정을 축하해주셨고(아이슬란드 갔다온다고 했을 때와는 생판 다른 반응 좀 보소), 이른 시간에 공항까지 태워다주시기도 한 집주인 부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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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정지는 바르셀로나.
나의 여행계획은, 어떤 도시에 머물면서 내 마음과 느낌에 따라 체류를 연장하던가 다음 도시를 그 때 정하고 예약하는 것이었다.
패키지 여행도 아닌데, 모든 여정을 다 짜놓고 그에 맞춰 (머물고픈 도시가 생겨도) 이동하고 (떠나고픈 도시가 생겨도) 체류하는 건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이후의 일정은 거의 백지상태였다.
영어권이 아닌 유럽국가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드디어 스페인 땅을 밟았다는 마음과 함께, 얼른 숙소에 짐을 풀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 날은 마침 저녁시간에 피카소미술관 무료입장을 예약해둔 터라, 시간이 촉박했다.
숙소는 시내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로 위치는 아주 좋았고, 공항버스도 바로 근처에 섰으며, 시설이 매우 모던하고 청결했다.
다만, 한국인이 많이 이용하는 숙소인 듯 보여 나처럼 '해외 속의 익명성'을 원해서 한인민박 대신 호스텔을 선택한 사람에게는 다소 불편한 곳이었다.
같은 국적끼리 방을 함께 쓰도록 배정하는지, 방 안의 모든 이가 한국인이라 괜시리 옷차림이나 행동거지가 신경쓰이고, 내게는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을 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보려던 건축물도 많고 대도시라서 일부러 길게 일주일을 잡아놨는데, 이 때 후회했다. 3일만 일단 예약해놓는 것이 현명했으리라.
어찌되었든, 바삐 피카소미술관으로 갔다.
사실 시간은 이미 초과되었는데, 융통성을 발휘해주셨는지 입장은 가능했다.
미술관 작품은 취향껏 훑어보고, 기프트샵을 더 진지하게 감상하는 건 나만의 방식.
사실 배가 고파서, 박물관에서 뭔가를 감상하고 음미할 여유도 없었다.
혼자라서 어마어마하게 북적이는 맛집은 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배가 고픈 와중에도 한참을 배회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어딘가에서 비교적 한산하고 접근성이 좋아보이는 곳을 발견했고, 보통의 식사와 상그리아를 곁들였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 첫 날이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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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서의 일주일을 돌이켜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 크고 볼 거리가 다양해서 가히 일주일을 투자할 만한 도시
- 가우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는 곳(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축복의 도시)
- 기존의 번화가와, 새로이 태어난 신생 번화가가 융화되고 있어 왠지 '대도시스러운' 곳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보름지구의 새로운 가게들, 개성있는 샵, 공방들을 다 둘러보고 싶었다)
- 하지만, 한국인 관광객이 미어터져서 어딜가도 여행의 고독함은 맛볼 수 없던 곳
특히 마지막은.. 바르셀로나의 유일한 단점일 지도 모른다.
어느 가게를 가도, 우연히 들른 체인점마저도 한국인 관광객으로 바글거려서 여기가 한국인지 유럽인지 모를 정도.
내가 더블린에서 와서 그런지 문화충격으로 다가올 수준이었다. (더블린은 한국관광객은 많지 않으니 말야)
스페인이 뜨고 있는 관광스폿이라더니 정말이었던 거다.
그래도 그 외에는 정말 만족스러운 일정이었다.
내 흥미와 체력수준을 고려해서 반나절 가우디 투어를 한 것도 훌륭한 타협이었고, 내가 보고픈 걸 더 많이 보고, 안봐도 되는 건 덜 보려고 노력했다.
스페인의 맛있는 커피를 매일매일 저렴하게(커피값이 더블린보다 훠얼씬 저렴. 한 잔에 1유로 대로 충분하다) 두루 경험해볼 수 있어 천국 같던 곳. 샵들이 구비해놓은 물건들이 다 매력적이라, 여행지 시작부터 캐리어의 공간이 충분한 지, 미리 보스턴백 하나 사두어야 하는 지 고심하게 했던 곳. 드넓어서 도보로 다 보긴 어려웠지만, 시내 이곳저곳 누비고 걷는 재미가 들었던 곳.
특히 중요한 건, 내가 바르셀로나에서 이번 여행의 분명한 컬러를 찾았다는 점이다.
"많이 걷고, 또 걷기"
바르셀로나 첫 날 밤에 피카소 미술관에서 나와 고전적인 돌벽 사이 좁디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떠올린 것이다.
내가 그 해 봄에 'CALL ME BY YOUR NAME'이라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었는데, 그 배경지에서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곳은 이탈리아고 나는 스페인이었지만.
그 골목길에서 콜미바이유어네임의 감동이 재현되고 있었다.
그리고 걷는 재미를 붙였고, 이번 여행의 테마가 되었고, 앞으로 내가 할 여행의 테마, 내 일생의 여행방식으로 삼기로 하게 했던 것이 큰 수확이었다.
그래서 대중교통은 되도록 타지 않았고, 나는 대중교통 일주일동안 10회 이용권을 채 사용하지 못하고 꽤 많이 남기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대신 매일 내 건강앱에는 수만보의 걸음수가 찍히는 기염을 토했다.
걷고 또 걸으며 바르셀로나를 내 발과 감각, 눈, 머리, 가슴에 새길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 방식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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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던 점은 숙소에서 있었던 한국인 관광객들과의 교류에서 발생된 (나의) 문제였다.
내가 그런 교류를 원치 않아서 한인민박은 피하고 있었는데, 방 숙박객이 한국인이다보니 분위기에 휩쓸려서 밤에 같이 술을 마시러 나가기도 하고 다음날 일정에 일부를 동행하기도 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끌려 다닌 부분이 없지 않았다.
줏대있게 '나는 나만의 길을 가겠어' 했으면 어땠을 지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라 '한번 가볼까?' 이런 식으로 갔다가 내가 정작 하고픈 것은 놓치게 되기도 하고.. 나는 역시 인간관계는 미숙하구나. 내 의견을 확고히 내보이는 것도 아직 멀었구나 싶어 한국에 돌아갈 일이 살짝 두려워지던 순간이었다.
물론 그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말이야.
첫 여행지에서의 깨달음이라, 그 다음 장소부터는 좀 더 개선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공부가 된 거니 좋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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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했듯이 바르셀로나는 매력적인 대도시, 그러나 바쁘디 바빠 정신없는 곳이었다.
내가 가장 기대하는 '휴양' 이자 '생각할 시간과 환경'은 이 곳에서 얻기 힘들다고 결론내렸다.
소매치기가 파리 다음으로 많은 세계 2위 도시라, 경계하라는 말도 수없이 들었고, 주변에 새로 산 갤럭시 핸드폰을 털리거나 말도 안되게 가방을 통째로 분실하거나, 호스텔에서 비자까지 털려서 마드리드의 대사관까지 간 유학생 이야기, 방의 사물함 잠금장치를 누군가 만진 흔적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거주하기엔 힘든 도시라고 생각하며 좋은 기억만 애써 남기며 다음 행선지, 말라가(MALAGA)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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