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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더블린 어학연수 6개월을 마치며.. 한 줌의 반성, 그리고 기대감

kimkiwiKKK 2019. 9. 29. 15:20

어학연수 6개월의 기간을 돌이켜보자.

행복했다.
행복하고, 평화로움 그 자체.
직장인이던 시절의 내겐 꿈 같은 일상을 몸소 경험했다.

어학원을 다녀와, 만족스럽게 점심을 해먹고, 동화 속 아늑한 다락방 같은 내 방으로 돌아와 창문으로 하늘과 구름을 보다가 낮잠을 자고, 저녁 즈음 일어나서 식사를 하다가 어느 날은 하우스메이트 언니 ㅅ의 귀가 시간에 맞춰 티타임을 하거나 와인타임을 즐기는 (팔자 좋은) 유학생의 일상.

집주인 ㅈ은 내가 부잣집 딸이라고 생각했던지, 농담으로 "리치 걸"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그렇게 보일만도 하겠다.
다른 친구들처럼 알바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만날 홀리데이 가고 여행가고, 집에서 놀기나 하고 말야.

 

하지만 이는 반성할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귀한 시간을 내고, 돈을 지불하고, 심지어 100% 내가 벌어모은 돈만 썼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데, 얻고싶었던 성과에서 어느 정도나 이루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말야.
 
인생의 방향,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 결심하고 돌아오겠다는 목표는 이루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큰 성과)
행복한 삶으로 가기 위해 무엇을 중요시 할 지, 영어 공부를 스스로 원하게끔 어떠한 목표점을 갖겠다는 건 얻어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유학생들이 목표로 하는 '실질적인 영어능력 성취'로 보자면 빵점일 지도 모른다.
영어에 자주 노출되는 환경이었지만, 그 이상 적극적으로 부딪치지 못하고, 수업시간에도 언저리에서 맴돌며, 생각보다 안나오는 내 영어실력에, 안들리는 리스닝 능력에 좌절해 슬럼프를 오랜시간 겪었다.
교우관계 역시,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을 건지, 말 건지 결정을 못하고 중간에서 방황하는 시간을 겪었다는 점이 아깝다.
차라리 완벽하게 혼자 재미지게 살아보던가, 아니면 무작정 친구만들기에 철판을 깔고 밀고나가 보던지 했어야 했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소극적이고 소심한 아시안 이미지만 더 단단히 만들어버렸어.

한편으로는, 영어 외에 전반적인 공부 - 이를테면 세계사, 개괄적인 서양철학사, 아일랜드 역사에 대한 이해, 전반적인 세계에 대한 앝고 넓은 지식 등 - 에 대한 열의가 가득했었는데 이 또한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다큐와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트이고 오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나는 생각보다 학구적인 인간이 아니었던 지 나중에는 유튜뷰의 한국 예능프로를 보거나 시간죽이기 용 영상을 보며 일시적인 흥미만 충족시키는 생활을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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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불만족스럽고, 어떤 면에서는 만족스러운 변화가 있었다.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다른 유학생들에게 그 때의 유학생활이 어땠냐고 물으면 "엄청 좋았어! 정말 재미있고, 완벽했어!" 라는 반응을 자주 보는데, 나로서는 도통 납득이 가질 않는다. 어떻게 완벽하게 좋은 시간을 보낼 수가 있지?
항상 부족함이 느껴지고, 아쉬움이 묻어나고, 그래서 완벽하게 좋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단 말야.
부러웠고, 왠지 그들에게 지는 거 같아 서글펐던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안심인 것은, 내가 중요한 '방향'을 잡아왔다는 거고, 더블린을 다녀오기 전과 후로 인생을 나눠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전환점'을 만들어 왔다는 점의 의의를 두고 싶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움켜진 마른 모래 한 줌처럼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 무언가 스쳐지나갔다는 흔적만 남긴 시간으로 두고두고 후회했을 지도 모를 2018년의 더블린 생활이 분명 내 인생 전반전에 '어떤 큰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다독왕은 되지 못했지만, 인생에 두고두고 읽을 책 몇 권을 얻었고,
아일랜드 역사에 해박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일랜드 역사에 관련된 영화도 보고 책도 읽었고 간단히 대화를 나눌 정도의 얕은 흐름은 파악하고 있지 않은가.
다큐에 취미는 붙이지 못했지만, '알쓸신잡'을 보고 지적능력에 대한 욕망을 키우고, 여행을 통해 직접 많은 것을 보고 느끼지 않았는가.
'사람'이 얼마나 인생에 중요한 선물인지, 마음을 주고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기쁨인지, '음식'이 인생을 얼만큼 풍요롭게 하는 지, 한국에 정착해서 적극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직장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고 일하고 싶은 열정이 바닥부터 샘솟았지. 그러면서도 때때로 단기로 연수를 나와 일본어나 영어 말고도 다른 제3외국어들을 섭렵하고 싶다는 나의 강한 욕구를 알아차렸다. (학구열이 강하지 않은 내가 유일하게 강렬하게 느낀 '외국어 공부'에 대한 뜨거운 열망)

반성은 해야하지만, 칭찬도 해주고 싶은 2018년.
그리고 그 전의 모든 경험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생각하게 해준 스물여덟, 그리고 지금 스물아홉의 의미있는 시기.

다시 한번 선언하지만,
나는 정말 잘 살거고 내 주위의 좋은 사람들과 뭉클한 시간들을 많이 보내어 '이 곳(더블린이자 현생의 삶)'에 다녀간 의미를 남기고 싶다.

 

넓고 쾌적한 공원을 갈 수 있다는 행복. 여유.
집에서 도시락 싸와서 먹고 마시는 즐거움. 와인은 한 병 통째로.
새로운 하우스메이트 환영 식사. 상그리아와 고기 쌈.
리피강 어느 한 켠에서.
여기가.... 아마 킬라이니 힐?
집에서 잘 차려먹는 기쁨. 자취(自炊)가 주는 행복을 처음 알게 한 더블린.
그래프튼 거리는 역시 버스킹. 영화 '원스'의 여운.
내가 찜했던 라스마인이라는 동네의 레트로한 영화관 '스텔라 씨어터'는 하우스메이트 동생들을 데리고 갔는데 만족! 고전적인 공간에서, 고전적인 영화를 보았지.
꽃을 직접 사본 일이 얼마만이던가. 이 것도 여유가 있다는 증거. 꽃병 대신 술병.
독립서점을 좋아하는 내가, 더블린에서도 제 버릇 남 못주고 찾았던 '아트북 페어'.
크리스 마스 기념 행진이라고 한다.
어학원 근처, 스테판스그린 공원 근방에 있던 조금은 올드하지만 매력적인 소극장 공연. 술마시며 앉아 최고의 음질로 음악을 경험할 수 있다는 기쁨